전라남도경찰청 헤어진 가족이 56년만에 상봉, 장성경찰의 ‘정성치안’으로 눈물 훔쳐
56년동안 다른 사람의 이름으로...절망의 끝에 가족을 만나
기사입력 2024-05-11 07:02 최종편집 경남우리신문
작성자 윤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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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11살로 말이 어눌해 타인과 소통이 되지않았던 A씨는 1969년경 부산으로 이사간지 5일만에 부산 국제시장에서 고모의 손을 놓쳐 부산 장림동 소재 불상의 고아원에 강제입소하게 되었다.
A씨는 부산소재 고아원을 거쳐 전남 장성에 거주하는 고아원장의 가족 B씨에 의해 1977년경 전남 장성군으로 이주하여 취적신고후 현재까지 A씨 이름으로 살게되었다.
그러나 올해 2월 갑작스런 외아들의 사고로 다시 가족을 잃게되는 아픔을 겪게 되자 A씨는 법정후견인 C씨와 함께 쪽지에 A씨의 어릴적 이름과 3명의 형제자매 이름을 적어 장성경찰서를 방문하였다.
장성경찰은 A씨가 자신의 어릴적 이름은 ‘최종원’이라는 진술과 온라인 특정조회를 진행하여 1950년부터 1685년생까지 큰형, 남동생, 여동생의 이름을 가진 287명의 인적자료를 확보하고 2차례에 걸쳐 가족과 헤어졌던 경남, 부산지역에 본적(등록기준지)을 두고있는 큰형, 남동생 등의 제적자료를 읍사무소를 통해 확보해 확인했지만 호적자료가 모두 한자로 되어있는 등 자료 확인이 어려워 사실관계를 정확하게 판단할수 없었고 취적신고지 행정복지센터에도 관련자료를 찾아볼수 없었다.
전국적 탐문수사를 위해 대상자 287명의 주소지 관할구역 경찰서별 자료를 분류하여 16개 경찰청, 139개 경찰서로 공문 발송하고 민원업무관리시스템에 해당 경찰서로 배정관서 지정하여 소재수사를 확대하였고 마침내 접수 37일만인 지난 5. 3. 오후 경남 하동에서 살고있는 큰형을 찾게 되었다.
24. 5. 7. 오후 2시경 장성경찰서에서 A씨는 56년간 가슴깊이 그리던 큰형, 누나, 남동생, 여동생 모두를 번갈아 안고 소리내어 뜨거운 눈물을 한없이 흘렸다.
A씨의 큰형은 당시 동생을 잃어버리고 이사한지 며칠 되지 않은 부산을 모두 익힐 정도로 부산소재 모든 고아원을 방문하였지만 1969년 그 당시 고아원의 불친절했던 나쁜 기억과 집안이 가난하여 먹고살기 바빠 계속해서 동생을 찾지 못했고 타인과 의사소통도 되지 않아 아마도 죽었을 거라 생각하고 사망신고까지 했다고 한다.
그러나 다행히도 가족 제적 등본상에는 A씨의 사망신고는 이루어지지 않은 것으로 확인되었고 A씨가 알고있는 남동생과 여동생의 이름은 집에서 부르는 이름으로 실제 호적상 이름과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장성경찰서 청문감사계 이선미 경위는 전남경찰이라면 당연한 일을 한 것 뿐이다. 작은일에도 정성을 다하는 전남경찰의 정성치안활동으로 애타게 기다렸던 시간을 기쁨과 행복으로 보답할수 있어 무척 마음이 가볍고 뿌듯하다고 전했다.
6.25전쟁, 어릴적 미아, 해외입양 등으로 주변에 찾지 못한 가족의 애타는 사연을 알고있다면 경찰에서 접수하는 ‘헤어진 가족찾아주기’를 상담해볼수 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