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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고 싶은 길] 대관령 선자령 눈꽃길
기사입력 2010-01-21 14:41   최종편집 경남우리신문
작성자 경남시사우리신문편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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춥지도 않고 눈조차 없는 겨울은 삭막하고 을씨년스럽다. 사방천지 온 세상이 은세계를 이루고, 매서운 삭풍이 면도날처럼 섬뜩하게 느껴져야 비로소 겨울답다. 대관령을 찾는 사람들이 겨울철에 유독 많은 까닭도 우리나라의 어느 곳보다 날이 춥고 폭설도 잦아서 겨울 특유의 풍경과 정취를 만끽할 수 있기 때문이다. 북풍한설 몰아치는 대관령에서는 잠깐 서 있기만 해도 머릿속까지 맑아지고 가슴이 뻥 뚫리는 듯한 상쾌함을 맛볼 수 있다. 하지만 그 정도로 성에 차지 않는 사람들은 대관령~선자령 구간의 백두대간 능선길을 주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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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람 거센 선자령 부근, 백두대간 능선에 세워진 풍력발전기     © 시사우리신문편집국


대관령~선자령 눈꽃길은 대표적인 겨울 트레킹 코스 중 하나로 손꼽힌다. 대관령은 해발고도가 8백32미터, 선자령은 1천1백57미터다. 직선거리로 4.2킬로미터가량 떨어진 두 곳의 표고 차이는 3백25미터에 불과하다. 두루뭉술한 산봉우리 몇 개가 징검다리처럼 놓였고, 산과 산 사이는 들녘처럼 평평한 백두대간 능선으로 이어진다. 그래서 대관령에서 선자령으로 가는 길은 등산이 아닌 트레킹이다. 혹한, 폭설, 강풍 등에 대비한 장비와 복장만 제대로 갖추면 겨울철에도 큰 어려움 없이 다녀올 수 있다. 실제로 선자령 눈꽃길을 걷다 보면 초등학생 아이가 포함된 가족 트레커들도 간간이 마주치게 된다.

대관령에서 선자령으로 가는 길은 두 갈래다. 원래는 백두대간 능선을 따라가는 길 하나뿐이었으나, 근래 산림청에서 계곡 길을 새로 개설했다. 백두대간 능선길은 조망이 상쾌하고 웅장한 느낌을 주는 대신에 전체적인 풍광이 약간 단조롭다는 느낌을 준다. 반면에 새로 난 계곡길에서는 잣나무, 낙엽송, 물푸레나무, 참나무, 전나무, 속새, 조릿대 등이 번갈아 군락을 이루고 있어서 지루하지 않게 해준다. 하지만 능선길에 비해서는 웅장하거나 상쾌한 맛은 떨어지는 편이다. 그러므로 최상의 조합은 가는 길과 돌아오는 길을 달리해서 두 길을 모두 섭렵하는 것이다. 대관령에서 선자령까지 갔다가 되돌아오는 순환등산로의 길이는 모두 10.8킬로미터로 너댓 시간이 소요된다.

선자령 순환등산로는 강릉 출신의 소설가 이순원 씨와 산악인 이기호 씨가 개척한 ‘강원도 바우길’(cafe.daum.net/ baugil)의 첫 번째 구간이기도 하다. 두 사람은 대관령을 넘고 경포대를 거쳐 정동진 바닷가까지 이어지는 강원도 바우길 1백50킬로미터를 개척했는데, 대관령에서 선자령 정상까지의 순환등산로를 ‘선자령 풍차길’이라 명명했다. 바우길의 ‘바우’는 흔히 강원도 사람을 일컫는 ‘감자바우’를 상징하는 말이자 고대 바빌로니아 신화에 등장하는 건강의 여신을 지칭하는 이름이다. 이순원 씨는 누구나 그 길을 한번 걷기만 해도 몸과 마음이 저절로 건강해질 것이라는 주술적 의미와 신화적 의미를 담아서 ‘바우길’로 이름지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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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망 상쾌하고 웅장한 백두대간 능선길을 올라

경인년 새해의 첫 주말 아침에 횡계행 직행버스에 몸을 실었다. 새벽부터 흩날리기 시작한 눈발이 제법 굵어지더니 마침내 고속도로가 눈길로 변했다. 결국 예정 시간보다 1시간 20분이나 늦게 횡계 버스정류장에 도착했다. 다시 택시를 타고 옛 대관령휴게소에 도착한 시간은 오후 2시 40분. 선자령 정상까지 갔다 오기에는 매우 빠듯한 시간이었다. “그래도 일단 갈 수 있는 데까지는 가보자”며 새로 개설된 계곡길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선자령 계곡길은 옛 대관령휴게소 건물에서 대관령 국사성황사 방면으로 3백미터쯤 올라간 지점에서 시작된다. ‘선자령 순환등산로 5.8킬로미터’를 알리는 이정표와 함께 여러 개의 안내판이 세워져 있어서 길 찾기는 어렵지 않다. 처음에는 평탄한 풀숲 길을 짧게 걷다가 이내 잣나무와 물푸레나무가 울창한 숲에 들어선다. 초입부터 눈앞에 펼쳐진 설경이 가히 환상적이다. 단가 ‘사철가’에 묘사된 겨울 산의 풍경을 고스란히 재현해 놓은 듯하다.


‘가을이 가고 겨울이 돌아오면/ 낙목한천 찬바람에 백설만 펄펄 휘날리어/ 은세계가 되고 보면은 월백설백천지백(月白雪白天地白)허니/ 모두가 백발의 벗이로구나/……’



선자령 계고길은 대관령 양떼목장의 맨 위쪽 울타리와 나란히 이어진다.
선자령 계곡길은 대관령 양떼목장의 맨 위쪽 울타리와 나란히 이어진다.
 
작은 개울을 두엇 건너고 속새가 군락을 이룬 습지를 가로지른 뒤 짧은 나무계단 길을 올라서자 뜻밖의 이국적 풍광이 시야를 가득 채웠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대관령 양떼목장의 최상부에 올라선 것이다. 비록 울타리 밖이지만, 대관령 양떼목장의 근사한 설경을 입장료(건초 구입비) 한 푼 안 내고 공짜로 구경했다. 선자령 계곡길은 양떼목장의 울타리와 나란히 이어지다가 다시 잣나무 숲을 가로지른다. 잣나무 가지마다 무겁게 내려앉은 눈이 이따금씩 하얀 눈보라를 일으키며 휘날리는 진풍경이 연출되기도 한다.


고즈넉한 대관령 국사성황사도 둘러보고

대관령휴게소를 출발한 지 1시간 10분이 지나서야 1.6킬로미터 거리의 풍해조림지 삼거리에 도착했다. 이곳에서 만난 중년의 부부와 함께 새봉전망대까지만 오르기로 결정한 뒤 대관령 국사성황사 쪽으로 길머리를 돌렸다. 사실 그동안 지나온 길의 설경을 본 것만으로도 아쉬움이 남지 않을 정도로 근사했다. 그 부부를 만나지 않았다면 국사성황사만 둘러본 뒤에 곧장 대관령휴게소로 내려갈 작정이었다.

하얀 눈에 뒤덮인 대관령 국사성황사는 산사처럼 고즈넉했다. 전국 방방곡곡에서 찾아온 무격(巫覡)들의 악기 소리와 사설이 늘 끊이질 않는 곳인데, 이날은 산신당 앞에 서서 묵묵히 기도하는 박수(남자무당) 두 사람만 눈에 띄었다. 국사성황사에서 조붓한 시누대 길을 2백미터만 걸으면 백두대간 능선길에 올라선다. 여기서 동쪽으로 가는 길은 강릉으로 내려가는 대관령 옛길이고, 남쪽으로 가면 대관령휴게소가 나온다. 선자령으로 가려면 북쪽 길을 택해야 한다. 여기서 무선표지소 앞까지 약 5백미터 구간은 딱딱하고 삭막한 콘크리트 포장도로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많은 눈에 뒤덮인 길바닥이 푹신해서 의외로 걷기가 편했다.

백두대간 능선길의 나뭇가지에 피어난 상고대
백두대간 능선길의 나뭇가지에 피어난 상고대
 
무선표지소 앞의 갈림길에서 선자령 정상까지의 거리는 3.2킬로미터. 시곗바늘은 이미 오후 4시 3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해 지는 시간까지 약 1시간밖에 남지 않은 셈이다. 다행히도 바람이 잦고 시계(視界)도 최악은 아닌 데다 능선길의 경사가 완만하고 사람들의 발자국도 뚜렷해서 야간산행을 감행해도 괜찮겠다는 판단이 섰다. 동행한 부부의 의향을 물었더니 “웬만하면 선자령 정상까지 가는 것이 좋겠다”고 했다.

선자령으로 가는 백두대간 능선길은 산책로나 다름없다. 아주 완만한 오르막길의 연속이어서 평지를 걷듯 빠른 속도로 이수(里數)를 늘릴 수 있었다. 시간이 워낙 빠듯한 데다 갑작스럽게 안개까지 몰려오는 바람에 새봉전망대는 아예 올라보지도 못했다. 날씨 쾌청한 날의 새봉전망대에서는 동해 바다와 강릉 시내가 손에 잡힐 듯이 가깝게 보인다.

안개는 더욱 짙어졌다. 그야말로 오리무중이라 1백미터 전방조차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설상가상으로 바람까지 거세지기 시작했다. 선자령이 멀지 않았음을 말해주는 기상변화이다. 연신 귓전을 때리는 바람소리에 뒤섞여 산짐승의 울부짖음 같은 “우웅~우웅~” 소리도 들렸다. 소리를 좇아 몇 걸음 더 다가가니 풍력발전기의 거대한 위용이 눈앞을 가로막았다.


능선 곳곳 세워진 풍력발전기는 또다른 볼거리

'백두대간 전망대'라 불릴 만큼 조망이 탁월한 선자령 정상
 
내내 자욱하던 안개가 삽시간에 걷히자 백두대간 능선의 곳곳에 세워진 풍력발전기들이 죄다 형체를 드러냈다. 대관령과 선자령 일대의 대관령풍력발전단지에는 높이 80미터의 타워(기둥)에 직경 82미터의 거대한 회전날개가 부착된 풍력발전기 53기가 세워져 있다. 백두대간 능선길에서 듣는 기계음이 다소 낯설고 생뚱맞긴 하지만, 이제는 외지 관광객들의 발길을 대관령으로 끌어들이는 이색 관광자원으로 완전히 자리 잡았다.

선자령 정상은 의외로 평범하다. ‘백두대간선자령’이라 새겨진 거대한 표지석 이외에 딱히 눈에 띌 만한 것도 없다. 하지만 조망만큼은 비할 데 없이 시원스럽다.

‘백두대간 전망대’라는 별칭이 어색하지 않을 정도로 사방팔방으로 시야가 활달하다. 매봉, 황병산, 새봉, 대관령 등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 능선이 한눈에 들어오고, 동쪽으로는 검푸른 동해 바다, 서쪽으로는 대관령 삼양목장의 광활한 초지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하지만 노루꼬리처럼 짧은 겨울 해가 이미 서산 너머로 자취를 감춘 뒤라, 일망무애(一望無涯)의 그 탁월한 조망을 차분하게 누릴 여유가 없었다.

기념 촬영을 마치자마자 서둘러 하산을 시작했다. 선자령 정상에서 4.8킬로미터 떨어진 한일목장을 거쳐서 횡계리 이촌마을로 내려가는 임도를 하산코스로 잡았다. 임도에는 오래되지 않은 차바퀴의 흔적이 또렷한 데다 비상용 헤드랜턴이 2개나 있어서 어둠 속에서도 이촌마을의 큰길까지 무사히 내려설 수 있었다. 인적 끊긴 찻길을 터벅터벅 걸으며 되새겨 보니, 방금 전까지 걸었던 그 눈길이 꿈길처럼 아득하게 느껴졌다. “맞아. 아름다운 기억들은 늘 그랬었지.”



여행 정보


숙박
대관령 아래의 횡계리 일대에는 레포빌펜션(033-336-8338), 대관령옛길펜션(033-336-3622), 구름위의테라스(033-333-7733), 남우장(033-335-5581) 등의 펜션과 호텔, 콘도 등이 즐비하다. 하지만 용평리조트와 알펜시아 스키장에 사람들이 몰리는 스키 시즌의 주말과 휴일에는 숙소를 구하기도 어렵고 숙박료도 만만치 않다. 그러므로 겨울철에는 대관령 너머 강릉 지역의 동아호텔(033-648-4411), 경포수모텔(033-644-1239) 등의 숙박업소를 이용하는 것이 경제적이다.


맛집
황태의 본고장인 횡계리에는 황태회관(033-335-5795), 송천회관(033-335-5943) 등 황태요리 전문점이 많다. 담백하고 따끈한 황태국은 추위에 얼어붙은 몸을 녹여주고, 매콤하고 고소한 황태구이는 산행 후 쇠해진 기력을 보충해준다. 횡계리의 또 다른 별미인 오삼(오징어+삼겹살)불고기는 도암식당(033-336-5814)과 납작식당(033-335-5477)이 맛있다. 그리고 원조맷돌순두부(033-336-2386)집은 직접 갈아 만든 순두부 맛이 일품이다.


가는 길
승용차│영동고속도로 횡계나들목→구 영동고속도로(456번 지방도)→옛 대관령휴게소(상행)
대중교통│서울의 동서울종합터미널에서 진부, 횡계 경유 강릉행 버스가 06:30~20:05 사이에 하루 24회 출발. 2시간 30분 소요. 횡계 버스정류장에서 대관령휴게소까지는 노선버스가 없으므로 택시(033-335-6263, 5960)를 이용해야 한다. 요금은 7천~8천원 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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