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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소 공자가 말한 사무사(思無邪)의 뜻을 알 것 같다.
점 삿된 없는 투명함. 순수함. 진실함.
기사입력 2011-07-04 11:19   최종편집 경남우리신문
작성자 김윤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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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소 공자가 말한 사무사(思無邪)의 뜻을 알 것 같다. 한 점 삿된 없는 투명함. 순수함. 진실함.
 
아이가 어른이 되어간다는 것은 어느새 자기만의 그늘을 가지게 되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세상을 접하고 세상을 알아가면서 더 이상 순수할 수만은 없다는 것을 알게 될 때 아이의 얼굴에는 한 겹 한 겹 그늘이 쌓여가게 된다. 온갖 잿짗의 그늘들이. 그리고 그것은 때로 시커먼 어둠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 물들인 청바지도 물이 빠져 원래의 하얀 천으로 돌아가기 마련이다. 손때가 묻으며 시커매진 옷이 다시 바래기 시작하며 한결 부드러운 흰빛 천으로 돌아가는 것처럼 그렇게 덕지덕지 내려 앉은 그늘마저 시간 속에 바래기 시작한다. 머리가 하얗게 새어지는 무렵이다.
 
노인의 웃음을 갓난아이의 그것과 비교하고 하는 것도 그래서다. 아무것도 알지 못해서도 사람은 순수할 수 있지만, 모든 것을 알고 겪고 삭이고 나서도 사람은 순수할 수 있다. 이미 더 이상 더럽혀질 수 없는 순수이기에 그 순수란 더욱 갚진 것이다. 인간이 살면서 얻는 마지막 선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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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네이버     © 경남우리신문편집국
차라리 울기라도 했으면. 그나마 84세 되신 노강진 할머니는 서러운 사연마저 없었다. 오히려 내내 활기차고 유쾌하기까지 했었다. 그러나 세월의 무게로 더 이상 예전과 같이 부를 수 없게 되었음에도 끝끝내 음정을 부여잡고 바른 소리를 내고자 노력하는 모습은 그 자체로 감동이었다. 거짓 없는 순수함. 꾸밈 없는 투명함. 그야말로 생각함에 삿됨이 없다.
 
아무것도 없이 투명한 하늘이 이러할까? 아니면 누구의 발길도 닿지 않은 새하얀 설원의 느낌이 이러할까? 울컥. 그것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갖는 순수한 동경일 것이다. 그 순수야 말로 인간이 이르고자 하는 노스텔지어인 것이다. 인간의 낙원은 그곳에 있다.
 
이미 15년 전에 먼저 천국에 가신 아내에게 들려주고 싶다던 79세 홍기표 할아버지, 시집가려는 딸에게 혼자서도 잘 살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던 67세 박원지 할머니, 15년 전에 역시 먼저 세상을 떠난 아들을 생각하며 '만남'이라는 노래를 들려준 할머니라기에는 아직 젊은 54세의 정재선씨. 아마 요들송을 비롯 다양한 노래를 들려주며 유쾌한 웃음을 선사해주었던 62세 역시 젊은 유혜정씨 또한 이분들과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죽은 아내를 생각하는 마음이며 함께 살고 있는 자식과 손주를 생각하는 마음, 이제 결혼을 하고 자신의 행복을 찾아야 할 딸에게 걱정을 끼치고 싶지 않은 어머니의 마음이며, 그리고 먼저 간 아들을 가슴에 묻으며 그를 떠올리며 부르는 어머니의 노래까지. 그것은 끝끝내 노래의 박자를 맞추지 못하고 시원스레 발걸음을 돌리고 말았던 56세 김동봉씨의 노래나 이제 자식들도 다 장성하고 은퇴하여 노년의 삶을 즐기고 있다는 60세 김우연씨의 노래와도 같은 것이었다. 계산되지 않은 순수함. 다른 어떤 궁리도 들어 있지 않은 바로 그 질박함. 바로 오디션장 앞에 숙소를 잡고 멀리 화순에서 올라왔다는 56세 양순영씨의 악보를 쥔 떨리는 손과 떨리는 목소리가 그것이었을 터다. 그 간절함이 들리는 듯하다.
 
더 잘하려는 욕심이야 누구나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것을 억지로 거짓되게 꾸미지 않는다. 그래서 그분들의 목소리는 마치 아이와도 같이 맑다. 동요를 부르는 아이마냥 순수하고 정직해서 깨끗하다. 너무 맑은 물을 보고 있으면 어쩐지 서러워지는 마음과 같은 것일까?
 
그냥 눈물이 흐르고 말았다. 사실 사연은 그다지 머리에 두고 있지 않았다. 이미 그동안 기사로 나온 것도 있고, 이런 프로그램을 만들려면 이런 정도의 사연은 당연히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머리로 듣고 머리로 여상하게 넘기고 말았다. 그런데 노래를 듣는 순간 그만 울컥 - 아니 울컥도 아니었다. 눈이 무척 아프다 느꼈을 때는 이미 더 이상 TV를 보지 못할 정도로 눈물이 흐르고 난 다음이었다.
 
어떤 눈물이었을까? 모른다. 알고 싶지도 않다. 그다지 잘 부른 노래도 아니었을 것이다. 어디서나 들을 수 있는 그런 노래였을 것이다. 그다지 세련되지 못한 창법에, 그다지 정교하지도 못한 노랫소리에, 한없이 촌스럽고 어색하기만 한 모습들에, 그러나 미처 느끼기도 전에 눈물부터 흐르고 있었다. 그리고 김동봉씨나 김우연씨, 유혜정씨 등을 보면서는 자신도 모르게 해맑게 웃고 있었다.
 
하기는 감정이란 그렇게 순수한 것이다. 순수하게 웃고 순수하게 울고 순수하게 화내고. 그래서 아이들은 감정이 격하다. 자신의 감정을 애써 숨기려 들지 않는다. 점차 궁리가 들어가고 계산이 들어가면서 자신의 감정에도 솔직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웃어야 하는데도 웃지 못하고, 울어야 하는데도 울지 못하고, 그러나 그런 궁리와 계산이 통하지 않는 대상에 대해서는 누구나 솔직해지지 않던가. 예를 들어 어머니의 거칠고 못난 손과 같은. 주름투성이의 검버섯핀 얼굴과 같은.
 
단지 솔직해졌을 뿐일 것이다. 당신들처럼. 단지 당신들만큼 크고 넓지 못하기에 넘치는 감정을 주체하지 못했으리라. 따라 웃고 따라 운다. 아니 웃지 않아도 따라 웃고 울지 않아도 따라 운다. 마치 조선의 막사발처럼 계산되지도 궁리되지도 않은 그 질박함에 어느새 잔뜩 높이 쌓아 놓은 마음의 경계도 그대로 녹아 허물어져 사라져 버린 때문일 것이다.
 
그러고 보면 외할머니 돌아가시고 무덤 앞에서 실컷 울고 올려다 본 하늘은 그렇게 맑았었다. 구름 한 점 없이 그렇게 쨍하도록 맑았었다. 어려서 외할머니와 함께 살았다. 외할머니께서 일찍 혼자가 되신 탓에 어머니의 뜻에 따라 적적하실까 외할머니와 함께 살게 되었었다. 외할머니의 쪼그라든 주름투성이 젓가슴을 만지며 잠들던 시간들이 있었다. 지금은 어머니뻘들일 테지만 말이다.
 
어쩌면 마치 죄인이 된 듯한. 모든 자식은 부모 앞에 죄인이라 하지 않던가. 어머니가 생각날 테고, 어머니의 거칠고 주름진 손이 떠오를 것이다. 아버지의 짓무른 눈동자와. 저리 작은 분이 아니셨는데. 그리 당당하고 꼬장꼬장하신 분이 저리 작아지셨다. 아마 그것은 나이를 먹고 내가 저분들 또래의 노인이 되어서도 비슷한 마음이지 않을까?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모두는 누군가의 자식이다.
 
너무 울었다. 지금도 머리가 지끈거리며 아프다. 울지 않으려 그리 애썼는데. TV를 보면서 - 더구나 예능을 보면서 이렇게 어이없이 눈물을 보일 수는 없다며 그리 버티려 애썼는데. 그러나 가슴이 내 뜻을 따라주지 않았다. 너무나 크고 깊은 순수에 취해버린 것일까? 순수에 이끌리는 것은 바로 가슴이 갖는 본능일 것이다. 덕분에 이렇게 머리가 아프다.
 
위험한 프로그램이다. 내가 나를 주체하지 못한다. 내가 나를 감당하지 못한다. 멋대로 눈물이 흐르고, 그저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어느새 눈시울이 뜨거워지고.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있을까? 지금도 이런데 앞으로 프로그램이 진행되면서 더 눈물 날 장면들을 대하게 된다면 그때는 어찌해야 할까?
 
금지해야 한다. 더 이상 방송으로 내보내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진심으로 해 본 생각이었다. 이러다 내가 죽을 수도 있다. 울다 울다 지쳐서 눈은 짓무르고 눈가는 붓고 머리는 멍하다. 비내리는 하늘도 올려다 보면 그때처럼 서럽도록 해맑을까? 시리도록 투명할까?
오디션이라는 한계를 넘어서 버렸다. 하긴 오디션이란 무엇인가? 꿈이다. 열정이다. 무엇보다 욕망이다. 성공에 대한 욕망. 마침내 성공을 이루고야 말겠다는 의지. 그런데 <남자의 자격> "청춘합창단"에는 그런 것이 전혀 없다. 단지 합창에 도전해 보고 싶은 순수한 욕구만이 있을 뿐. 뒤늦게 합창을 통해 이루고 싶은 소박한 꿈과 작은 열정이 있을 뿐. 그 온기가 사람들을 취하게 만들었다. 이미 누구를 뽑고 누구를 탈락시킨다는 건 의미가 없어졌다. 심사 자체가 불가능하다.
 
한국 합창의 거장 윤학원씨를 볼 수 있어서 기뻤고, 뮤지컬계의 신민아라 일컬어진다는 임혜영씨는 무척 아름다웠다. 그래도 이런 미인이 있어야 보는 즐거움이 있다. 최근 예능출연이 잦아진 박완규가 임혜영과 더불어 지휘를 맡게 된 김태원을 보좌하게 되었다. 대한민국 최장수밴드 부활을 이끌어 온 리더 김태원이 윤학원의 지도 아래 지휘를 맡아 이들 두 사람과 합창단을 이끌어가게 될 것이다. 윤학원씨와의 첫만남부터 심상치 않은 것이 기대를 키워가게 된다. 비록 스케일이나 장르는 다르지만 하나의 밴드를 27년간 이끌어 온 내공에 기대하게 된다.
 
걱정했었다. 작년의 성공을 등에 업고 합창단 시즌2를 만들었을 때 원조만큼 호응이 있겠느냐? 원래의 "하모니" 미션에 대한 기대도 있고, 같은 포맷을 반복한다는 식상함도 있을 것이다. 시즌1을 넘어서지 못한다면 아류로써 오히려 비난과 조롱만 듣고 끝날 것이다. 김태원이 지휘를 맡는다고 했을 때도 설마 <위대한 탄생>의 "위대한 멘토" 김태원의 이름값에 기대려는 것을 아닐까.
 
그러나 기우로 끝나고 말았다. "하모니"와 "청춘합창단"이라는 제목 만큼이나 작년의 "합창단"과 올해의 "합창단"은 전혀 다른 미션이 되고 말았다. 시즌1과는 전혀 다른 느낌. 시즌1과는 전혀 차별화된 재미와 감동이. 단지 출연한 면면의 문제가 아니다. 악보를 쥔 긴장으로 떨리는 손과, 긴장해서 제대로 나오지 않는 목소리, 그래서 마침내 우황청심원을 챙겨와 먹는 거기에 있는 것이다. 정직하게 깨끗하게 그대로 담아 부르는 노랫소리처럼. 이미 준비된 지휘자가 아니라 모두가 만들어가는 지휘자. 모두가 만들어가는 합창. 또다른 의미가 시작되지 않을까.
 
노래는 이야기였다. 차마 말로 다 하지 못할 말보다 더 벅찬 이야기였다. 말로써 다 하지 못할 때 사람은 노래를 하고, 노래로도 부족할 때 춤을 춘다. 공자가 말한 사무사 역시 그런 뜻이 아니었을까? 시경의 노래들에 담긴 그 순수한 격정을 보는 것이다. 계산되지 않은. 궁리하지 않은. 그것이 사람의 마음을 움직인다. 그런 진심에 진실이 있고 진리가 있다.
 
또 한 번의 큰 성공을 기대해 본다. 어머니와 아버지의 모습을 떠올리며 눈물을 흘리는 사람들과 동년배들의 당당한 모습에 살아갈 꿈과 열정을 다시 일깨울 사람들과. 하필 경쟁 방송사의 동시간대 프로그램이 <나는 가수다>라는 점에서도 기대가 크다. 이미 사람들은 음악을 들어 버렸다.
 
눈이 아프다. 이런 건 말로 하는 것이 아니다. 직접 보기를. 일주일이 너무 짧다. 내가 오디션을 보려는 것 같다. 설렌다. 기쁘다. 가슴이 따뜻해진다. 바람마저 선선해지는 듯하다.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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