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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 전 대통령,'영욕의 삶'마치다
기사입력 2021-11-25 15:39   최종편집 경남우리신문
작성자 박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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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月刊시사우리]전두환 전 대통령이 지난 23일 서거했다.  향년 90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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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2 쿠데타'의 주역 전두환 전 대통령 서거     ©e시사우리신문 편집국

1931년 경남 합천에서 태어나 육군사관학교를 11기로 졸업했다. 

 
지병을 앓아오던 전 전 대통령은 이날 오전 자택 내에서 쓰러졌고, 오전 8시 55분쯤 경찰과 소방에 신고됐다. 경찰은 오전 9시 12분쯤 사망 사실을 확인한 것으로 파악됐다.  

 
지난달 26일 12·12 군사 쿠데타 동지였던 노태우 전 대통령이 별세한 데 이어 한 달도 되지 않아 전 전 대통령도 세상을 떠났고, 전 전 대통령은 1979년 12·12 군부 쿠테타를 주도하면서 한국 역사의 시계를 뒤로 돌렸으나 단 한 번도 역사적 책임을 시인하지 않고 그대로 별세해 한국 현대사의 가장 어두웠던 한 시기가 불완전하게 매듭지게 됐다. 

 

전 전 대통령은 1931년 1월 경남 합천 율곡면에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10남매 중 넷째 아들이었다. 형 둘이 어려서 숨졌고 셋째형 기환씨, 동생 경환씨와 누이들만 살아남았다. 

 
5세 때 집이 대구로 이사해, 대구공업중학교와 대구공고를 다녔다. 집안이 어려워 일찌감치 대학 진학을 포기했고, 대신 국비로 다닐 수 있는 육사에 1951년 입학했다. 

 
전 전 대통령은 생도 시절에는 축구를 잘했고, 육사 대표팀 골키퍼로도 이름을 날렸다. 

 
그는 1955년 육사 11기로 졸업한 직후 육군 소위에 임관했 이후 박정희 전 대통령이 주도했던 1961년 5·16 쿠데타 당시, 육군 대위였던 그는 육사에 근무했던 장교들과 생도들의 쿠데타 지지 시위를 주도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시위 주도로 박정희 소장의 눈에 들어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실 민원담당 비서관에 임명되는 등 고속 승진의 길을 열며 '정치 군인'의 길을 걸었다.

 
하지만 1962년 군내 사조직인 하나회를 조직하는데 앞장섰고, 하나회는 훗날 그가 군사 쿠데타를 일으키는데 핵심 기반이 됐지만, 민주화로 가는 길목을 막는 역할도 하게 돼 비판의 대상이 됐다. 

 
이후 그는 1963년에 당시 박정희 정권을 지탱해주는 핵심 조직이던 중앙정보부의 인사과장을 거쳐 1969년에는 육사 동기생 중 최초로 대령으로 진급, 육사 출신들의 선망의 근무처이던 육군참모총장실 수석부관 자리에 임명됐다. 

 
1974년에 역시 동기생 중 처음으로 김복동 전 5사단장 등과 함께 준장에 진급했고, 소장으로 진급한 1978년 제1사단장 시절에는 제3땅굴을 발견한 공로를 세웠다. 

 

전 전 대통령은 1979년 보안사령관 때 맞닥뜨린 10·26 사태부터 이듬해 8월 그 자신이 대통령이 될 때까지 단 1년만에 모든 권력이 자신으로 집중되게끔 용의주도하게 행동했고, 노태우 정호용 유학성 허삼수 등 하나회 동기와 후배들을 규합해 12·12 쿠데타를 주도해 단 하루만에 계엄사령관 정승화와 그 주변 인물들을 내란방조죄로 체포함으로써 최고의 실세가 됐다.   

 
그는 80년 5월 신군부의 쿠데타를 반대하는 광주 시민들을 유혈 진압하며 수백명의 희생자를 낳으며 두고두고 역사의 죄인이 됐다. 

 
그는 1980년 8월15일에 최규하 대통령의 하야를 이끌어낸 이후 그 해 8월29일 통일주체국민회의 대의원의 간접선거로 치러진 대선에 단독출마해 제11대 대통령에 당선돼 9월에 공식 취임했다. 

 
대통령에 취임하자마자 대통령 임기 7년 단임제 및 간선제에 의한 대통령 선출을 골자로 한 새 헌법을 만들어 1981년 2월에 치러진 대통령선거인단에 의한 간접선거에 또 당선돼 그해 3월 제12대 대통령에 취임하며 제5공화국 정부를 출범시켰다.

 

그는 집권 기간 내내 민주화 시위에 시달리다 퇴임 후 12·12 반란죄 등의 혐의로 감옥으로 가는 벼랑끝에 몰리다 마침내 불행한 생을 마감했다. 

 

유족으로는 이순자 여사와 아들 재국·재용·재만 씨와 딸 효선 씨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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