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보훈처,7월의 독립운동가 홍언(洪焉)선생 |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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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보훈처,7월의 독립운동가 홍언(洪焉)선생
기사입력 2011-06-30 22:47   최종편집 경남우리신문
작성자 이해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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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보훈처는 광복회.독립기념관과 공동으로 미주 한인합성신보, 신한민보의 주필 및 흥사단에서 활동하고, 대한인국민회 중앙총회 부회장으로 교민사회의 지도적 역할을 하였으면 독립운동 자금을 모아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지원한 홍언 선생을 7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하였다.   
 
선생은 일제강점기 미주한인사회의 민족운동에서는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선생이 사망한 뒤, 미주사회에서는 선생을 고결하고 참된 애국자이며, 평생을 우리의 문화향상과 사회와 국가에 대한 모든 것을 솔직하게 비판한 작가ㆍ시인ㆍ평론가로 평가하고, 자신의 모든 사생활을 희생한 인물로 기억하였다. 
 
선생의 본명은 홍종표이다. 서울에서 태어나 한학을 수학하고 일시 중국을 다녀온 뒤, 1904년 하와이로 이민하였다. 1910년 이전에는 하와이에서 여러 언론매체의 주필로, 그리고 1911년 이후에는 미주 본토에서 대한인국민회의 기관지인 『신한민보』의 편집과 기고가로 수십 년 봉사하였다.  또한 선생은 『신한민보』에 ‘동해수부’ 등의 필명으로 시ㆍ시조ㆍ소설ㆍ희곡ㆍ전기ㆍ수필 등 다양한 장르에서 수백 편을 발표하는 등 언론가이자 작가로서 활동하였다.
 
선생은 대한인국민회에서 오랜 기간에 걸쳐 직임을 맡았으며, 흥사단의 창립단우로 흥사단 활동에도 열심이었다. 미주한인사회에서 한국독립운동을 위하여 한인단체를 주도하거나 재정지원을 한 인물들도 많지만, 문필로 그만큼 공헌한 인물은 찾을 수 없다. 뿐만 아니라 선생은 화교들과 교류하며 한국독립운동에 대한 지지를 얻어내는데 기여하였다. 여러 차례 미국과 캐나다, 멕시코와 페루 등 중남미를 순방하여 화교들에게 한국독립운동 지원금을 모금하였던 것이다. 중국화교들과의 친분은 재정지원 이외에도 한중연대에 징검다리 역할을 하여 만보산 사건 당시 그러한 선생의 노력이 크게 부각되었다.
 
선생은 무엇보다도 미주 한인단체인 국민회 역사의 정리에 심혈을 기울였다. 비록 완성되지는 못하였지만, 선생이 『신한민보』에 1944년부터 1년간 「국민회약사」를 50여회 연재하였으며, 1949년에도 다시 연재를 시도한 것으로도 짐작되는 일이었다. 이미 1910년대부터 선생은 국민회 역사의 정리를 시작하였던 것이다. 이러한 선생의 다양한 활동은 미주 한인사회와 민족운동의 파수군 역할을 하였다고 평가된다. 1951년 별세 후 선생은 로스앤젤레스의 로즈데일 묘지에 안장되었다.
 
정부에서는 선생의 공훈을 기려 1995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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