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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 리플리 "무기질의 흑백에서 화사한 꽃빛으로"
기사입력 2011-06-07 23:59   최종편집 경남우리신문
작성자 김윤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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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리(이다해 분)를 보고 있자니 떠오르는 이야기가 있다. 너무 기구해서 끝내 종교단체에서 운영하던 보호시설에서마저 거부당해야 했던 어느 아주머니의 이야기다.그 분의 인생역정을 일일이 이제 와 이야기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다만 너무 상처가 크고 깊어서 작은 상처마저도 그리 버거워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항상 거짓으로써 갑옷처럼 자신을 두르고 있었다. 그리고 다가오는 사람들에게는 날카로운 가시를 촘촘히 세우고 위협하고 있었다. 거짓말과 그리고 난폭한 폭력성. 같은 수용자들이 감당하지 못할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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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스 리플리 "무기질의 흑백에서 화사한 꽃빛으로"     © 경남우리신문편집국

끝내 대기발령을 받고 그 작은 모욕감에도 참지 못하고 이사인 장명훈(김승우 분)을 찾아가 따지는 저돌성, 그리고 총리의 딸인 유우(박지연 분)가 몰래 호텔을 빠져나가 사라지자 그녀를 돌려세우기 위해 거짓말을 하면서도 그녀는 누구보다 진심을 담아 이야기하고 있었다. 무엇보다 유타카=송유현(박유천 분)의 고백을 거절하는 도도하고 오만하기까지 한 그녀의 모습은 그녀가 놓인 현실과는 전혀 동떨어진 것이었다. 아마 작가(김선영 극본)가 대본을 쓰면서도 그런 부분도 충분히 고려하지 않았을까.
 
어쩌면 친엄마로부터 버림받고 고아원에 들어간 순간부터 그녀는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입은 상태였다. 그렇게 허세를 부리듯 자존심을 세우고 고집을 부리고 거짓말을 일삼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일본에서의 처참하던 삶들과 그리고 한국에서의 여러 우여곡절들. 그녀는 그렇게라도 강해지지 않으면 안 되었다. 더 이상 상처입어서도 잃어서도 안되기에 그녀는 그렇게라도 웅크린 채 가시를 세울 수밖에 없었다.
 
그런 점에서 지난 6월 6일 월요일 <미스 리플리> 3회에서 가장 인상깊었던 장면이 바로 고아원 동기 문희주(강혜정 분)과 그녀의 집에서 회포를 풀던 장면이었다. 문희주는 그저 기쁘고 흥분되어 이것저것 시시콜콜 떠들고 그리고 장미리는 그것을 듣고 있지 않다. 말은 듣고 있지만 그녀의 감정은 다른 곳에 가 있다. 마모되고 마모되어 버린 그녀의 감정은 더 이상 그런 이야기에 웃고 울고 반응하기에는 너무 지쳐 있다. 마치 세상 다 산 노인처럼. 무엇보 보고 있지 않고 무엇도 듣고 있지 않다. 단지 그 자리에 앉아 있을 뿐이다.
이다해의 연기에 새삼 감탄하게 된 장면이기도 했었다. 단지 촛점이 모호한 눈빛만으로 그 순간의 장미리의 감정을 연기해 보인다. 그것은 울다울다 지쳐버린 아이의 마지막 버둥거림이었을 것이다. 너무 많은 것을 보고 너무 많은 것을 듣고 너무 많은 것들을 겪고 그래서 지쳐 있지만 그래도 그녀는 결코 포기하고 있지 않다. 그녀의 돌변한 표정이 그것을 말해준다. 마침내 문희주의 졸업증명서를 발견했을 때 그녀도 문희주처럼 활달하게 변해 있었다. 그것은 유우에 대한 정보를 얻기 위해 호텔 직원을 유혹하던 모습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차갑게 식은 격정이 그녀의 안에서 불타오르고 있다.
"네, 물론 일자리가 급했어요! 그래서 본 적도 없는 남자를 무작정 따라왔구요! 그런데 그게 단지 일자리가 급한 마음에만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세요? 좋은 사람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어요. 어쩌면 믿고 의지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그래서 과연 장명훈 앞에서 그녀가 내뱉은 말들은 그녀의 진심이었을까? 사실 어디까지가 진심이고 어디까지가 거짓인지는 그녀 자신도 잘 모를 것이다. 진심을 드러내기에는 그녀의 상처가 너무 깊고, 거짓을 말하기에는 그녀의 자존심에 앉은 딱지가 너무 단단하니까.
 
단지 이끌리듯 그 순간에 필요한 말을 계산하여 자연스럽게 내뱉고 만다. 그녀가 거짓말을 하는 방식이다. 거짓조차 진심이 되는 방법이다. 다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장미리의 성격에 그렇게 드러내 놓고 적의를 보이고 도발하는 것은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사인 장명훈은 그녀가 잘 보여야 할 대상이지 싸움을 걸어야 할 대상이 아니다. 어떤 관계가 있지 않겠는가. 그 순간 그녀는 마치 아이가 되어 있었다.
 
아버지를 필요로 한다. 어려서 잃은 아버지를. 그리고 그녀를 나락으로 떨어지게 만든 양아버지를 대신할 좋은 아버지를. 그것은 그녀를 버리고 떠나간 어머니의 대신이기도 하다. 그녀의 내면에는 아직 울고 있는 자라지 못한 아이가 있다. 아이가 시킨다. 무섭다고. 두렵다고. 겁난다고. 그러니 가리고 감싸고 지켜달라고. 가시를 세우고 이를 드러내고. 송유현이 설사 몬도그룹의 후계자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하더라도 장명훈이 아닌 송유현을 선택할 것 같지 않은 이유다. 송유현은 아직 너무 어리다.
 
호텔A의 전반에 대해서 장명훈이 물려받게 될 것이라는 장명훈의 장인이기도 한 이회장(송재호 분)의 말에 표정이 바뀌는 장면은 그런 점에서 사족과도 같다. 하긴 송유현과 균형을 맞추기 위해서라도 그런 정도의 장치는 필요했을까. 진실처럼 거짓을 말하고, 거짓처럼 진실을 말한다. 자신을 향해 도발해 오는 장미리를 보며 피식 웃고 마는 장명훈의 모습은 그런 장미리의 속내를 꿰뚫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유우에게 자신도 동성애자였다고 말한 장미리의 말을 과연 장명훈은 진심으로 들었는가? 아니면 유우를 돌려세우기 위한 거짓말임을 간파하고 있었는지 모르겠다. 어쩐지 장미리의 거짓말을 꿰뚫고 있다고 여겨지는 것은 상당히 다정하면서도 엄격한 아버지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그동안의 장명훈의 모습 때문일 것이다. 귀여운 어리광처럼 보였을까? 더불어 유우를 찾아내는 행동력과 실천력, 거기에 유우의 처지와 속내를 읽고 그에 맞는 말과 행동을 보인 통찰력 등을 높이 평가했는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이성으로써 이미 끌리고 있거나. 장명훈 역시 아직까지 속내를 드러내 보이지 않고 있다.
 
송유현과 그의 아버지의 아내 이화(최명길 분) 사이에는 어떤 사연이 있었을까? 그다지 친한 모습으로는 보이지 않는데 그러나 무척 깍듯하다. 다른 드라마에서 보이는 노골적인 적의 같은 것은 보이지 않는다. 송유현의 캐릭터가 구체화되기 위해서는 이 관계에 대한 구체적인 묘사가 필요하다. 그리고 더불어 이제 옛친구 장미리까지 더해지며 문희주의 수난시대는 언제나 끝나려는가. 그녀의 작품을 송유현마저 인정하고 있음에도 첩첩산중일 뿐이다. 문희주의 수난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인물의 묘사가 정말 세밀하고 입체적이다. 실제 저런 사람이 있겠거니. 어쩌면 저 상황에서 저 사람은 저리 판단하고 행동할 것이다. 인간에 대한 이해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물론 그것을 살려내는 것이 배우의 연기다. 김승우나 이다해나. 복잡한 내면을 훌륭히 겉으로 표현해 보여주고 있었다. 최고의 캐스팅이라 생각한다. 넘치지도 않고 모자르지도 않는다. 새삼 감탄하며 보게 된다.
 
일주일. 지난주 전혀 아무런 사전정보조차 없이 우연찮게 보기 시작한 이래 일주일을 기다려 이제 겨우 3회다. 앞으로 또 4회. 다시 한 주일을 또 기다려야 한다. <로열 패밀리>를 그렇게 재미있게 보았다. 올해 MBC드라마가 드디어 일을 내려는 모양이다. 장미리와 사랑에 빠질 것 좋다. 최고다. 멋지다./스타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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