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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月刊시사우리]11월 11일은 농업인의_날이다. 그러나 보통은 빼빼로데이나 가래떡데이가 더 익숙할 것이다. 농촌의 상황이 이렇다. 오죽하면 빼빼로데이에 가려진 농업인의 날을 알리고자 정부에서 가래떡데이를 추가로 명명했을까 싶다.
농부증이란 용어도 마찬가지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생경하다. 농부증은 농업인들에게 주로 나타나는 증상을 묶어서 부르는 의학용어인데 증세는 대략 8가지이다. 어깨결림과 요통, 손발 저림 등 근골격계와 야간 빈뇨와 호흡곤란, 불면증, 어지럼증, 복부 팽만감 등이 있다. 이에는 속하지 않지만 피로와 스트레스 축적도 농부증에 속한다는 분석이다.
농촌_어디에나 있지만, 어디에도 없는 것이 이 농부증이다. 농부증의 증세를 호소하는 농업인은 많지만 질환에 대해 제대로 알고 적절한 치료를 받는 이들은 거의 없다. 많은 농업인이 건강에 이상이 있어도 빈곤한 생활이나 농사일이 바빠 진료를 제때 받지 못해 오랫동안 아픔을 참다가 손쓸 시기를 놓치는 경우가 많다. 농부증은 천천히 다가와 농업인들을 한순간에 쓰러뜨린다고 해 ‘보이지 않는 칼’이라 일컬어진다고 하니, 그 심각성은 직접 겪어보지 않아도 헤아려볼 만하다.
사실 농업은 국제노동기구(ILO)에서도 인정한 3대 위험 업종 중 하나이다. 농업분야 재해율은 2020년 기준 0.81%로 전체 산업평균 0.58%의 1.4배에 이른다. 농촌진흥청의 ‘2020년 농업인 업무상 질병조사’에 따르면 만 19세 이상 농민 176만 6219명 가운데 업무상 질병으로 하루 이상 휴업한 농민은 8만 8138명으로 나타난다.
이 가운데 근골격계 질환이 84.6%로 가장 많다. 흔히 삭신이 쑤시고 결린다며 호소하는 병이다. 농업에서 근골격계 질환이 많이 발생하는 이유는 농작업 환경이 가장 주요한 원인으로 장시간 근무, 반복적인 동작이나 불편한 자세, 과도한 짐이나 중량물 취급 등이 질병을 유발․악화하는 요인이다.
농약과 미세먼지도 치명적이다. 농약은 두통, 피부 가려움이나 농약 중독 증상 등을 유발할 수 있고 농약 중독은 호흡기계 질환뿐 아니라 신경계 질환, 치매 등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고 한다. 또한 미세먼지는 곡물․짚 등으로 인한 분진과 농기계 배기가스, 축사 내 암모니아․곰팡이 등으로 인해 발생한다. 이러한 환경에 장시간 노출되면 질병에 걸릴 확률이 높아진다.
농업 관련 질환들은 초기에 치료를 소홀히 하고 장기간 방치하면 중증으로 넘어갈 가능성이 크다. 재해율 또한 어느 산업 종사자들에 못지않게 높아 전문적인 관리가 필요하다. 그럼에도 익숙한 증상, 익숙한 고통으로 치부하며 치료의 골든타임을 놓치는 농업인들이 많다.
이에 전라남도 일부 시군에서는 작년부터 만 51세~70세 여성농업인을 대상으로 특수 건강검진을 시행하고 있다. 근골격계와 심혈관계, 골절․손상위험도, 폐활량, 농약 중독 등 5개 영역 10개 항목을 대상으로 한다. 농부증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관련 지원 정책에 관심을 두기 시작한 유의미한 시도라 할 수 있지만, 아직은 걸음마 단계로 그 대상과 범위를 더욱 넓혀 나가야 할 것이다.
2022년 기준 우리나라 농업인구는 약 102만 가구에 이른다. 기후 위기와 식량 위기의 본격화로 농업의 중요성이 부각 되는 지금, 농업은 국민의 생명을 보장하고 국가의 미래 기반을 안정적으로 조성하는 가장 근본적인 산업이다. 지금이라도 정부와 지자체에서는 지역별 농업인들의 건강관리실태를 조사하고 주로 발생하는 질환의 예방 및 재활시설 확보를 위한 지원정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농업인의 날인 11월 11일의 ‘1111’은 네 개의 일자가 모인 형태로 수확한 곡식이 가득한 창고를 상징한다. 가득 찬 창고는 비단 물질의 풍요만을 의미하지 않을 것이다. 농업인들의 건강한 삶을 채울 정책과 시스템이 가득찬 창고, 그것이 바로 우리가 바라는 진정한 ‘1111’의 모습일 것이다. 마음으로 기리고 진심으로 맞이하는 농업인의 날이 되도록 더 깊은 정책적 고민은 이어나갈 것을 다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