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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시사우리신문]패션스쿨 모다랩 안동연 학장이 전하는 교육이란 방향을 제시하고 사회로 들어가는 문을 열어 주는 것이다. 교육이란 방향을 제시하고 그곳으로 이끄는 것이라고 믿는다. 현 시대에 와서는 글로벌 무한 경쟁에서 살아남는 인재를 길러야 하는 것이지만 입시위주의 기계적 도식교육에서 벗어나 미래에 대한 비전을 보여줘야 한다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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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대학입시 성과에 일희일비하는 것은 매우 후진된 촌스런 짓이다. 아이들의 희망이 실망으로 더 나아가 절망으로 빠지지 않게 각 개인의 성품, 재능 그리고 기질을 인정하고 자녀 개인의 인권을 존중해야 하는 시대이다. 교육의 목적은 자아실현과 자신의 가치를 추구하여 더욱더 가치 있는 일에 헌신 가능하기 위함이다. 인간은 주체적 존재이기 때문에 자신의 길을 자신이 본능적으로 알게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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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1월 8일 조지 부시 대통령은 ‘낙오학생 방지법’ 이란 교육 개혁안에 서명을 했다.
이 법안은 “어떤 아이도 뒤처지게 하지 않는다. 는 목표 아래 ‘읽기’ 와 ‘수학’ 등 특정 과목 성적을 높이는 데만 초점을 맞춘 법안이다.
법안이 발효되면서 교육계는 송두리째 뒤집혔는데 학생들은 해마다 학업성취도 평가를 치르게 됐고 각 주가 정한 기준에 맞춰 학교별로 등급이 매겨지면서 교사들도 학생들의 성적에 따라 평가됐고 성적이 나쁜 학교는 퇴출되는 위기에 몰리는 지경에 이르렀다. 성적지상주의가 뿌리를 내리면서 당연히 학생들의 성적을 높이려는 부정 사건도 잇따랐다. 많이 듣고 본 익숙한 상황 아닌가. 우리나라 현 교육 시스템과 결코 다르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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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들, 젊은이들에게는 사회로 들어가는 문을 열어줘야 한다.
결국 2012년 1월 10년 만에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부시 행정부의 교육 정책을 비판하면서 10개 주를 시작으로 ‘낙오학생 방지법’ 을 철회하기로 한다. 단 하나의 잣대로 교육을 평가하고 몇몇 과목만 집중해서 가르쳐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오바마가 틈만 나면 칭찬하는 한국의 교육 제도는 미국의 제도를 롤 모델로 삼아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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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일제고사와 자율형 사립고 등 이명박 정부의 교육 정책은 부시 행정부의 정책에 큰 영향을 받았다고 알려져 있다. 그래서 여기에 등장하는 입시 위주의 커리큘럼, 체제 안에서 결정 권한을 잃은 의기소침한 교사들, 부모의 경제적 배경에 따라 교육 수준에 엄청난 차이가 나는 아이들의 모습은 우리에게도 낯설지 않은 것이다. 이런 우리나라 현 교육 시스템 아래 대학 진학에 관한 학생들과 재학생들 구리고 졸업생들의 이상과 현실 차이는 어마어마하게 크다.
아이들의 학습 기량이나 학교에 관한 생각은 고려하지 않고 무턱대고 모든 학생들에게 대학을 갈 수 있고 가야만 하며 대학만이 성공할 수 있는 유일한 선택이라고 말하는 사회정의는 이제더 이상 현실도 사실도 아니다. 변화된 세상에 직업은 얼마든지 많으며 이 때문에 배움의 전당인 학교가 요즘 심하게 흔들리고 있다.
시골학교는 학생이 줄어서 문을 닫고 도시학교는 학원에 밀려서 설 곳을 잃어가고 있으며 정부의 정책은 해마다 바뀌고 대부분의 학생들은 우왕좌왕하다가 졸업을 한다. 대개의 사람들은 성공하기 위해서 돈을 벌기 위해서라고 말하며 흔히들 좋은 학교의 기준은 일류대학교에 많이 들어가는 학교로 친다.
그리고 좋은 대학교의 기준은 대기업에 얼마나 잘 들어가느냐로 따지는데 결국 우리사회의 평가기준이 돈 잘 벌고 출세하는 사람을 성공하는 사람으로 보기 때문에 사람들이 자기 자식이 그런 성공한 사람이 되기를 원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교육이 교육 본래의 모습을 되찾고 성공하기 위해서는 학부모와 학생들이 품고 있는 교육의 목적에 대한 의식변화가 전제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 사회의 의식풍토가 바뀌어야 하는데 교육이란 곳간을 채워주는 정책이라 해서 ‘백년대계’ 라고 한다.
교육이란 미래의 사회와 나라를 이끌어갈 인재를 기르는 정책이기 때문에 눈앞의 이익만을 살피면 안 된다는 의미에서 그렇게 표현한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 교육은 백년대계가 아니라 십년대계가 된지 이미 너무 오래로 정부가 수립된 1948년부터 오늘까지 67년간 단독시험→연합고사→내신제→국가고사→또 단독시험→예비고사→학력고사→수능고사 등으로 교육정책이 8회나 바뀌었으니 백년대계는커녕 십년대계도 되지 못했다.
일관성 있는 백년을 내다보는 교육정책은 우리나라에서 예전부터 없었다. 이래저래 학부모와 학생들만 고달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