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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月刊시사우리]오늘은 24절기 중의 하나인 동짓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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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을 것이 귀한 철없던 어린 시절에는 나이를 먹든 말든 참으로 기다리는 날이었다.
팥을 삶은 물에 찹쌀로 만든 새알을 가마솥에 가득 넣어 끓이면 몇 날 며칠이고 배부르게 먹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이를 먹으면서 한 살 더 먹는 것이 싫어서 그런지 별로 가까이하지 않았다.
위장이 약해 팥죽을 멀리한 것도 하나의 이유이기도 하다.
동지는 생명과 재생의 의미가 있고 새 출발을 상징하는 날이기도 하다. 나이를 한 살 더 먹는 작은 설이다.
동지는 양력 12월 21일 또는 22일로 그 날짜가 특정되어 있다.
동지에는 세종류가 있다.
음력 초순에 들면 애동지(兒冬至)라 하고, 중순에 들면 중동지(中冬至), 그믐 무렵에 들면 노동지(老冬至), 혹은 오동지라고도 한다.
그런데 애동지일 때는 팥죽을 끓이지 않는다.
그 이유는 아이에게는 좋지 않다고 해서 팥죽 대신 팥 시루떡을 해 먹는다. 올해는 오동지라서 다행히 팥죽을 먹을 수 있었다.
동짓날 팥죽을 끓여 먹는 풍속은 중국에서 전래하였다고 한다.
일설에 의하면 공공씨(共工氏)의 자식이 동짓날에 죽어 역귀(疫鬼)가 되어 전염병을 퍼뜨리는 귀신이 되었다.
그래서 그가 살아 있을 때 싫어하는 팥죽을 끓여 역귀를 쫓았다는 풍속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도 고려 시대 옛 문헌에 동짓날 팥죽을 끓여 먹었고 액운을 쫓았다고 하는 것을 볼 수가 있어 꽤 오랜 전통을 찾아볼 수가 있다.
그런데 왜 팥은 귀신이 싫어하고 겁을 내었을까. 귀신은 붉은색을 겁낸다고 한다.
팥은 붉은색이다.
양기를 상징하는 곡식으로 찬 성질을 갖고 있다.
무속인들이 주술적인 행사를 할 때도 팥은 귀신을 물리치는데 약방 감초로 사용하고 있다.
그래서 동짓날 귀신이 싫어하는 붉은 팥으로 잡귀와 액을 쫓는 팥죽을 끓여 제일 먼저 조상신에게 올리고 집안 곳곳에도 한 그릇씩 떠 놓은 후 집안을 편안하게 보살펴 주는 신인 가택신(家宅神)에게 집안의 평안을 빌기도 한다.
그리고 대문, 담벼락, 집안 곳곳에 팥죽을 뿌려 잡귀를 물리치고 범접을 못 하게 한다.
올해도 인간의 밑바닥 인생을 허우적거리는 데도 어김없이 찾아온 날이라서 그런지 나훈아 가황이 부른 테스 형이 더욱 가슴에 와 닿았다.
“그저 와준 오늘이 고맙기는 하여도 죽어도 오고 마는 또 내일이 두렵다. 아! 테스 형, 소크라테스형 세월은 또 왜 저래”와 같이 동짓날은 공짜로 한 살 더 먹지만 반갑지 않은 손님이다.
나는 나훈아의 테스 형이란 노래를 좋아한다. 노래는 못하지만, 이 노랫가락속에 의해 인간의 삶을 반조(反照) 하는 철학적 의미가 함유되어 있기 때문이다.
특히 소크라테스를 끌어낸 것은 역시 가황 나훈아의 진면목을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소크라테스도 노래로 자신을 희화화한다면 얼마나 자존심이 상하겠나.
하지만 철학자의 반열에 있는 가황을 보고 엄지 척을 하면서 반겼을지도 모를 일이다.
소크라테스는 어떤 사람인가, “악법도 법이다.”라고 하면서 태연히 독배를 든 위인이다.
그뿐인가, 소크라테스는 구름 한 점 없는 날 태양이 대지를 비추고 있어도 손에 든 것이 있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촛불을 켠 등불이다. 보통사람들이 볼 때는 정신이상자가 하는 짓과 다름이 없었다.
이를 궁금해하는 한 사람이 물었다. 현인이시어! 이렇게 밝고 밝은 대명천지에 무엇 때문에 등불을 들고 다니십니까? 라고 하자 소크라테스는 그대는 내 마음을 모르는군, 내가 사람 같은 사람을 찾으려고 해도 저 태양 빛으로는 찾을 수 없어 이 등불을 켜서 조금이라도 더 보태면 사람 같은 사람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싶어 이 등불을 들고 다닌다“라고 했다.
그렇다.
예나 지금이나 사람 같은 사람을 잘 찾을 수 없다.
사람 같은 사람을 만나기는 하늘의 별 따기와 같다.
나도 맨날 수많은 사람을 만나지만 테스 형과 같은 심정이다.
왜 사람들은 이렇게 나를 실망하게 할까 싶어 원망도 해보지만, 이것은 나에게 답이 있다는 것을 금방 깨닫게 된다.
그것은 내 마음 같을 것이라는 나의 어리석음 때문이라는 것을.
다시는 이용당하지 말아야지, 속지 말아야지 하며 단단하게 다짐을 해보지만 남을 의심하는 것은 죄악 중에서도 제일 큰 죄악이라는 중압감에 나 스스로 백기를 드는 나약함 때문에 지금까지 나는 수많은 배신이란 상처를 받아왔다.
이런 다짐은 작심삼일이 되어 속고 속아 마음에 난 상처가 나을 때가 없다. 맨날 마음의 상처를 안고 사는 것도 내 운명인가.
지금까지 나를 배신한 사람이 잘 되는 것을 본 일이 없다. 왜 그럴까를 생각해 본다.
내게 무슨 위신력이나 영험력이 있어서 그런 것이 아니다.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는 세상의 이치 즉 인과응보(因果應報)의 우주 섭리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죄를 지으면 인과율(因果律)에 걸리기 때문에 될 수 있으면 죄를 짓지 않으려고, 아니 적게 지으려고 조심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내가 세상에서 제일 겁내는 것은 인과응보이다. 절대로 남을 이용하여 내가 득을 보는 일은 하지 않는다는 것이 나의 인생 신조이다. 다른 사람의 가슴을 아프게 해서 잘사는 것은 잘사는 게 아니다.
가황이 ”먼저 가본 세상 어떤가요. 테스 형”이라고 절규하듯이 소크라테스는 저세상에서도 사람 같은 사람을 찾기 위해 등불을 들고 다니지 않는지 궁금하다.
이상하게도 한 살 더 먹는 동짓날이어서 그런지 마음이 뒤숭숭하다.
나는 지금까지 한 살 더 먹는 것이 싫어서 동지팥죽을 먹지 않고 피했다.
그런데 올해는 동지팥죽을 많이 먹었다.
그 이유는 인생 막장을 살아온 다사다난했던 갑진년을 하루빨리 벗어나고 싶은 마음과 더 이상 인간으로부터 상처를 받지 않겠다고 하는 간절한 마음 때문에 실컷 먹었다.
우연의 일치인지는 몰라도 마침 목도리를 하고 먹다가 목도리가 팥죽에 닿는 바람에 양복 여기저기가 팥죽 세례를 받았다.
그런데 기분은 좋았다.
아! 내 몸에 붙은 모든 악귀와 악운을 쫓아내었다는 위안 때문이다.
나는 팥죽을 먹으면서 가황의 애절한 심정과 테스 형이 추구했던 이상세계(理想世界)를 담론했다.
의기투합도 했다.
갑진년 동지를 맞아 모든 액운을 털고 을사년에는 어수룩하게 살지 않고 나의 운명을 바꾸는 원년으로 삼겠다고 다짐도 했다. “사람이 돼라”라는 것은 우리 조상님들의 유언이다.
소크라테스가 그렇게도 찾고 싶어 했던 사람다운 사람이 되고자 다짐해본다.
아! 테스 형, 내 앞길을 밝혀주는 등불을 좀 들어주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