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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月刊시사우리]천하에는 상종하지 말아야 할 인간이 세종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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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는 약쟁이다. 약쟁이는 죽어가는 사람의 목숨을 갖고 돈벌이 수단으로 악용한다. 약쟁이 말을 들으면 죽는 사람이 없다. 자기 약을 먹으면 낫지 않는 병이 없다고 약을 팔아먹는 인간을 말한다.
둘째는 풍수쟁이다. 풍수쟁이는 묫자리를 갖고 상주와 흥정을 한다.
이 자리를 쓰면 자손이 번성하고 살림이 날마다 늘어난다고 하면 싫어할 상주는 없다. 입에 발린 거짓말을 잘해야 뒷돈을 많이 받을 수 있다.
셋째는 사주쟁이다. 답답하고 갈증이 나서 당장 샘물을 파고 지푸라기라도 잡아야 할 사람을 갖고 논다.
제일 거짓말을 잘하는 쟁이는 풍수쟁이, 사주쟁이, 약쟁이다.
나는 오늘 풍수쟁이가 되고 싶다. 다음 기회가 되면 사주쟁이와 약쟁이가 되어 선을 보일지도 모르겠다. 아마도 약쟁이가 먼저 되지 않을까 싶다. 나는 약쟁이 일에 손을 대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나는 풍수지리에 대하여 어릴 때부터 많은 관심을 두고 있었다.
하지만 전문적으로 공부한 것이 아니고 지감(知鑑)으로 조금 느끼고 있다.
사람들은 잘되면 자신 탓 못되면 조상 탓으로 돌린다. 나도 예외는 아니다. 일이 잘못되면 나 자신보다 산소를 잘못 썼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예로부터 우리 삶에는 길흉화복이 묘(墓)자리와 관련이 있다고 생각하는 풍수지리(風水地理)가 깊이 자리 잡고 있다. 용꿈을 꾸는 사람들은 조상 묘부터 이장하고 본다.
풍수지리는 중국에서 출발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신라말 도선국사에 의해 뿌리를 내리게 됐다. 도선국사는 비보풍수(裨補風水)의 대가이다.
왕건이 태어날 수 있도록 명당터를 잡아 준 것도 유명한 일화이다.
옛날 사대부에서는 풍수·관상·한의학 공부는 기본으로 한다.
임금 수업을 받는데도 기본 과목이다. 역대 임금 중에서도 숙종임금이 가장 풍수지리에 대하여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다.
숙종임금은 백성들이 어떻게 사는지를 위하여 미복(微服)으로 민정 시찰을 많이 했다.
어느 날 민정 시찰 중에 멀리서 묘지를 조성하는 것을 보았다. 그곳에 묘를 쓰면 절손(絶孫)되는 지네가 내려오는 혈(穴) 자리인 오공하강혈(蜈蚣下降穴)로 삼우(三虞)를 지내는 아침에 삼 형제가 비명횡사하는데 도대체 어떤 지관이 묫자리를 잡아 주었지 하면서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상주(喪主)에게 가서 눈물을 흘리면서 물어보았다. 누가 묫자리를 잡아 주었는가를 물었다. 상주는 저 아래에 있는 갈 처사라는 지관(地官)이 잡아 주었다고 했다.
숙종은 그 처사를 찾아갔다. 지관 어른 삼우 날 삼 형제가 다 죽는데 그 집하고 무슨 척이 있느냐고 물었다. 또한, 무엇으로 제액(除厄)하겠느냐? 그럼 그 애들을 어떻게 살릴 방도가 있느냐고 물었다.
이에 그 지관의 답은 간단했다. “그것은 왕의 눈물 세 방울만 떨어져도 제액이 됩니다.”라고 말하면서 유방(酉方)이 낮아서 괜찮다고 했다. 유방은 닭이다. 닭과 지네는 상극(相剋)이다. 그래서 허리가 아프든지 하면 닭을 삶을 때 지네를 넣고 푹 달인다.
지관은 “저 자리는 한강 물이 말라야 재산이 마르고 그 자손들이 마른다.”라고 하면서 오늘 임금님께서 눈물을 흘리셨기 때문에 제액은 되었습니다고 하면서 넙죽 엎드려 절했다고 한다.
이에 내가 어떻게 임금인 줄 알았을까. 풍수 대가라고 생각하고 있는 자신보다 몇 수 위의 지관을 보고 더 낮은 자세로 공부에 매진했다고 했다. 그 이후 숙종임금은 어느 경지에까지 올랐는지는 북망산에 잠들고 계셔 물어볼 수도 없는 딱한 노릇이다.
내가 어릴 때부터 풍수지리에 많은 관심을 두고 있었던 사연이 있다.
나의 증조부님 산소를 이장하고 난 이후 우리 집안은 벼락을 맞았다. 이장을 하고 난 후 곧바로 선고(先考)께서 태어나시기 전에 형님 되시는 두 분이 졸지에 사망하는 변고를 당했다.
조부께서는 밀양에 있는 지관의 말을 듣고 바로 아래로 이장하셨다.
지관은 현재 산소보다 조금만 아래로 쓰면 인물이 나고 재물이 엄청나게 인다고 해서 이장하게 했다. 그 당시 조부께서는 소가(小家)를 두고 잘 나가신 분이다. 조모님의 가슴에 대못을 박으셨다. 임종 시까지 외면하셨다. 어쩌다 선고를 낳으셨는데 자칫 잘못했으면 대가 끊일 뻔했다.
조모님이 할배를 외면했던 것은 소가를 들인 것보다는 반풍수의 말을 듣고 이장을 해서 애지중지하시던 두 아들을 가슴에 묻은 애통함으로 평생 할배를 원망하시다가 돌아가셨다.
나는 집안의 이런 사연 때문에 어릴 때부터 선친께서 증조부 묘를 잘못 이장해서 집안이 망하게 되었다고 하시는 한숨 소리를 들으면서 자랐다.
나는 철이 들면서 선친에게 원래 계셨던 자리가 좋은 것 같으므로 다시 그 자리로 이장을 하자고 말씀드렸다가 또다시 무슨 변고를 당하려고 그런 망발을 하느냐고 혼이 난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나는 집안의 이런 불행 때문에 묘(墓)자리에 관한 관심이 남달랐다. 차를 타고 가다가도 산소들이나 산세들을 그냥 지나치지 않는다. 왜 그런 곳에 묘를 조성하였을까, 저 산소는 참 잘 썼구나! 집안이 잘되겠구나 하면서 풍수쟁이가 되어 보기도 한다.
격물치지(格物致知)라고 나의 예감이 맞는 일이 있었다. 선친께서 한탄하시던 증조부 산소는 우백호를 치고 찌르는 좌향(坐向)이라서 풍수의 기본에도 어긋났고 우백호로부터 화를 당하는 좌향이었고 아무리 보아도 느낌에 산소에 물이 나는 것 같은 감이 들었다. 그래서 선친께서 살아계셨을 때나 선비께도 이장하자고 말씀드렸으나 말도 꺼내지 못하게 꾸중만 들었다.
그래서 “아이구 할마씨(선비) 돌아가시는 날에는 증조부님 산소를 이장하겠다”라고 마음먹었다.
20년 전에 선비께서 돌아가실 때는 5개월간 눈이나 비가 오지 않았다.
선비께서 돌아가시자마자 나는 증조부님 산소를 원래 계셨던 자리보다 약간 더 위쪽으로 자리 잡아 이장했다.
그런데 개장을 하였더니 물이 흥건하였다. 그 자리는 누가 보아도 물이 난다고 생각하지 않은 자리였다. 오래전에 갖고 있었던 나의 예감대로 물이 낫다.
얼마나 물속에서 고생하셨는가를 생각하니 마음이 너무 아팠다. 지금은 정남향의 유택에서 복락을 누리시길 기원해본다. 이런 자리에 묘소를 이장하였으니 집안이 벼락을 맞지 않을 수 없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풍수지리의 오묘함을 신봉하고 있다.
나는 지금도 나의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는 팔공산의 3대 명당이라고 하는 곳에 계시는 14대 조부님의 산소를 원망해 본다.
동봉 가는 팔공산 중턱에 계신다. 그 자리는 겨울철 나무꾼들이 쉬고 가는 자리다. 이 자리는 볕이 따뜻하게 들어오고 바람이 불어도 잘 모르는 대구가 한눈에 들어오는 명당이다.
지금은 소나무가 너무 크게 자라 풍광은 좋지 않다.
14대 조부께서 한양에서 돌아가시고 이 자리에 운구하여 모셨는데 그때 유명한 지관이 팔공산 어디 어디에 가면 눈이 녹아 있는 곳이 있을 것이므로 거기에 모시라고 했다. 과연 눈이 녹아 있는 자리가 있어 모시게 되었는데 좀 위쪽으로 묘를 쓰면 자손은 귀하지만 고관대작들이 많이 나오고 조금 아래 돼지 혈에 모시면 고관대작들은 별로 나오지 않지만, 자손들은 번성할 것이란 말에 후자를 택했다고 한다.
그 지관의 말대로 자손들은 엄청나게 많이 번창했으나 학자 이외에는 인물은 별로 나지 않았다.
나의 14대조께서는 무과에 급제했으며 임진왜란 때 대구의병장과 병조참판, 선무 2등 공신에 책록되신 분이다.
산소 입구와 맞은편 능선이 꺼져있다. 마치 문이 나 있는 것과 같은 지형이다. 지금도 산소 옆에는 물이 질펀하게 나고 있는데 산돼지들의 목욕탕이 되어 목욕을 즐기고 있다.
나는 나의 꿈이 좌절될 때마다 산소를 위쪽으로 모셨으면 출세를 할 수 있었는데 하면서 산소를 원망하는 푸념을 하고 있다. 모든 것은 전부 내 탓인데도 말이다.
풍수의 사연은 수없이 많다. 대표적인 것은 해인사가 자주 불이 나서 산에 소금단지를 묻고 난 이후부터 불이 잘 나지 않는다고 한다.
대구에서 유일하게 도시화의 변방인 덕분에 아직도 옛날 그대로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는 곳이 옻골선비마을이다. 이 옻골 입향조는 효종임금 대군시 사부로 나의 13대조 되시는 대암공(최동집)되는 분이다.
옻골마을도 앞이 확 트여 마을 입구에 비보나무를 심어 마을의 기운이 밖으로 빠져나가는 것을 막고 있다.
이밖에도 전국 곳곳에는 풍수에 관한 사연이 많이 있다. 나는 집안의 애사에 의한 사연으로 반풍수쟁이가 되었다. 그렇다고 비문을 써준 일은 있어도 다른 분의 산소 자리를 잡아 준 일은 한 번도 없다.
같은 값이면 다홍치마라고 풍수지리에 역행하지 말고 자연의 순리를 따르면서 사는 여유를 가져야 한다.
특히 자신의 땅이라고 다른 무덤을 가로막거나 절치하여 공장이나 집을 짓는 우는 범하지 말아야 한다.
세상에서 가장 큰 죄는 백골(白骨) 죄악이다. 반드시 화(禍)를 당하게 된다.
모든 일은 마음 씀에 따라 결과가 나타나기 때문이다.
명당은 3대 적선을 해야 얻을 수 있다.
신세타령을 하기 전에 적선지가 필유여경(積善之家 必有餘慶) 실천하면 반드시 운명이 바뀔 것이다. 반풍수쟁이의 거짓말이라고 생각한다면 반드시 후회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