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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우리신문]오스트리아 빈을 연고로 하는 '세계가치관 조사(World Values Survey·WVS)'는 비영리 사회과학연구기관으로서 1981년부터 민주주의, 환경, 가족, 종교, 정체성, 안보 등 광범위한 분야에 대한 의식 조사 결과를 내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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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VS'는 설문조사에 공통적으로 "만약 전쟁이 일어난다면 당신은 조국을 위해 싸우겠습니까"라는 질문을 포함해 왔다. 가장 최근인 2021년 조사에 따르면 해당 질문에 긍정적으로 답한 비율이 가장 낮았던 나라는 일본이었다.
"싸우겠다"라고 응답한 일본인들은 13.2%에 불과해 조사대상 79개국 중 가장 낮았죠. 리투아니아(32.8%), 스페인(33.5%), 마케도니아(36.2%), 이탈리아(37.4%)등이 일본의 뒤를 이었지만, 이들 국가에서 "싸우겠다"라고 응답한 비율은 30%대로, 일본에 비해 20%포인트 이상 많았다. 특히 일본은 "모르겠다"는 응답이 비슷한 순위권의 국가들에 비해 20~30%포인트나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일본 자위대의 전력은 지난해 GFP가 내놓은 세계 군사력 순위에서 5위를 차지할 정도로 막강하지만"모르겠다"라는 응답이 유독 많은 것은 이들이 소위 평화헌법(헌법 9조)을 의식했기 때문인 것으로 추정된다. 일본의 헌법 9조는 전쟁 포기, 전력 보유 불가, 교전권 부인 등을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본과 같은 패전국이자 전쟁범죄를 저질렀던 나라로 곧 잘 비교되는 독일의 경우, 응답자의 44.8%가 "전쟁이 나면 조국을 위해 싸우겠다"라고 답했다. "모르겠다"는 응답은 12.2%에 불과했다. 무엇보다 독일 정치인들은 지난 과오를 철저히 반성하는 행보를 보여왔고, 독일에선 일본처럼 '자학사관' 논란이 없다는 점을 감안하면 일본 역사수정주의자들의 주장은 아무래도 설득력이 떨어진다.
같은 질문에 대해 한국 응답자들은 67.4%가 "싸우겠다", 32.6%가 "싸우지 않겠다"라고 답했다. "싸우겠다"라고 응답한 한국인 비율은 조사대상 79개국 중 40번째로 정확히 중간 순위였다. 과거에 비해 감소 경향을 보였지만, 대체적으로 70% 전후를 유지해 비슷한 수준의 나라들과 비교해 별 차이는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한국은 "싸우지 않겠다"라는 비율이 조사기간중 거의 유일하게 일관적이고 지속적으로 늘어난 점이 눈에 띄었다. 1981년 6.5%에 불과했지만 조사 때마다 증가해 2017년 이후에는 32.6%까지 급증했다.
한편 싸우겠다고 응답한 비율이 가장 높은 나라는 베트남(96.4%)이었다. 요르단(93.8%), 키르기스스탄(92.7%), 중국(88.6%), 노르웨이(87.6%) 등이 뒤를 이었는데, 대체로 과거 침략전쟁을 겪은 나라들에서 높은 경향이 나타났다. 특히 중국은 시진핑 정권의 애국주의 교육 효과 때문인지 2010년기 74.2%로 하락세였지만, 2017년기 조사에서는 88.6%로 14%포인트 넘게 급등한 것으로 나타났다.
냉전이 종식된 1990년 전후, 안보 불안감이 해소된 덕인지 다수의 조사 대상국에서 "싸우겠다"는 응답은 감소 경향을 띠었습니다. 그러던 것이 2010년 전후로 다시 공통적으로 반등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대한 원인은 분명하진 않지만 2008년 리먼 쇼크로 촉발된 세계 금융위기 여파가 안보 불안감을 자극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2010년대 이후 세계화가 모두에게 과실을 안겨준다는 믿음이 흔들리면서 빈부격차, 산업 공동화, 이민자 문제, 테러리즘 등이 세계화의 어두운 면으로 부각됐죠. 이와 함께 민족주의와 국수주의가 세계 곳곳에서 기승을 부리기도 했다. 2016년 국민투표를 통한 브렉시트(Brexit·영국의 EU 탈퇴)와 그 이듬해 미국 대선에서 '아메리카 퍼스트'를 내세운 도널드 트럼프의 깜짝 당선 등은 이를 뒷받침하는 상징적 사건들이다.
올해는 러시아발 전쟁 여파로 각국 국민들의 안보 불안감은 어느 때보다 고조돼 있을 가능성이 크다. 우크라이나 이후 가장 전쟁 가능성이 높다고 거론되는 대만은 실제로 중국발 위협에 국민들의 의식이 높아진 상태다. 지난 3월 여론조사에서 대만인 70% 이상이 중국의 침공 때 싸우겠다는 의사를 밝혔고 현행 4개월 의무 군복무기간을 연장하는 데도 찬성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중국의 1차 타깃에는 대만 이외에 미국령 괌과 일본 오키나와가 포함될 확률이 매우 높다. 오키나와에는 주일 미군 전력 70% 이상이 집중돼 있는데다 지리적으로 가장 신속히 개입 가능한 위치에 있어 대만 사태와 분리해 생각할 수 없다.
가장 중요한 건 상황에 따라 주한 미군기지가 목표물이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다. 대만 유사시 주한 미군 투입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어제 폐막한 나토 정상회의에서 리즈 트러스 영국 외무장관은 러시아의 침공이 "푸틴의 전략적 오판"에 기인했으며, 중국도 똑같이 "파국적 오판을 할 실질적 위험"이 있다고 경고했다. 이어 "자유세계가 협력해 대만이 방어할 수 있게 돕고 대만해협의 평화와 안정을 강조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호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