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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시사우리신문]진보 논객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는 왜 조국과 유시민 그리고 친문세력 현 정부를 향해 쓴소리를 뱉는가?과연 진 전 교수는 문 정권에 저격수로 완전체로 변하게 됐다.그 이유는 무엇일까? 정말 아이러니 하다.이에 본 지는 문 정권과 친문세력들에게 강한 독설을 퍼붙고 있는 진 전 교수의 페이스북을 토대로 기사화 하기로 결정했다.예순 아홉 번째로 25일 오후 페이스북에 게재한 "오직 40%를 위한 정치"라는 제목을 들여봤다.-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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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는 25일 오후 페이스북을 통해"탄핵 이전만 해도 저기 경상도 지방에서는 "나라를 팔아먹어도 1번"이라 말하는 사람들울 흔히 볼 수 있었다"며"그때는 민주당 쪽에서 특정정당에 대한 이 맹목적 지지의 행태를 '정치적 광신'이라 비판했었죠"라고 게재하면서"그런데 지금은 민주당이 그 "1번"이 됐습니다. 요즘은 민주당 지지자들이 이런 광신적이에요."라며""우리 이니 하고 싶은 대로 다 해." "우리 국이 뭔 짓을 해도 괜찮아." 콘크리트 지지율 40%는 이런 광신층을 핵으로 보유할 때만 가능한 겁니다"라고 오직 40%를 위한 정치를 설명했다.
다음은 진중권 페이스북 전문이다.
오직 40%를 위한 정치
40%의 콘크리트 지지율은 원래 자유한국당이 갖고 있었던 거죠. 그 튼튼했던 보수의 지반이 박근혜 탄핵 이후 무너진 겁니다. 이제는 거꾸로 민주당에서 그 40%의 콘크리트 지지율을 즐기고 있죠. 한국사회의 주류가 바뀌었다는 얘깁니다. 과거에는 이른바 산업화의 엘리트들이 사회의 기득권층이었다면, 이제는 민주화운동의 엘리트들이 어느새 사회의 신흥기득권층으로 확고히 자리를 잡은 거죠. 이쪽이나 저쪽이나 하는 짓은 똑같습니다.
탄핵 이전만 해도 저기 경상도 지방에서는 "나라를 팔아먹어도 1번"이라 말하는 사람들울 흔히 볼 수 있었습니다. 그때는 민주당 쪽에서 특정정당에 대한 이 맹목적 지지의 행태를 '정치적 광신'이라 비판했었죠. 그런데 지금은 민주당이 그 "1번"이 됐습니다. 요즘은 민주당 지지자들이 이런 광신적이에요. "우리 이니 하고 싶은 대로 다 해." "우리 국이 뭔 짓을 해도 괜찮아." 콘크리트 지지율 40%는 이런 광신층을 핵으로 보유할 때만 가능한 겁니다.
민주당은 40%의 콘크리트 지지율을 확보했습니다. 반면, 야당들은 정확히 몇 개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분열돼 있습니다. 그러니 총선이든 대선이든 굳이 중도층에 호소하지 않고도 이들 40%의 표만 가지고도 이길 수 있다고 자신하는 거죠. 그래서 강경일변도의 꼴통스러운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꼴통스러운 지지자들의 꼴통스러운 지지를 다져 놓는 꼴통스런 전략을 쓰는 겁니다. 괜히 합리적 중도층에 소구했다가는 이들 무뇌 꼴통층에게 반감만 사게 됩니다.
이 포퓰리즘의 경향은 물론 한국만이 아니라 어느 정도로는 세계적 현상입니다. 다만 다른 나라에서는 이 흐름을 보수우익의 정당이 주도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한국에서는 엉뚱하게도 리버럴한 정당이 그 경향을 주도하네요. 해괴한 일이죠. 아무튼 그 결과 '리버럴'이라는 민주당이 실제로 보여주는 언동이나 구사하는 전략에선 (리버럴의 가치를 정면으로 거스르는) 파시스트적 경향을 드러내는 황당한 사태가 벌어지는 겁니다.
보수정권이 40%의 콘크리트 지지율을 즐길 때 그 콘크리트의 철근 역할을 했던 게 바로 오늘날의 태극기부대입니다. 그들이 보수의 핵을 장악하고 있다 보니, 탄핵 이후 보수의 환골탈태가 요구되는 상황에서 결국 그들에게 발목이 잡혀 개혁에 실패하고 말았죠. 그런 의미에서 태극기부대야말로 뮨재인 정권을 지탱해주는 최대의 버팀목입니다. 변화를 거부하는 그들이 보수의 헤게모니를 잡고 있는 한, 우리 사회의 친문 헤게모니도 영원할 겁니다.
현재 민주당 40%의 콘크리트 지지율에서 철근 역할을 하는 게 문빠들입니다. 민주당에서야 이들의 지지만으로도 선거에서 승리할 수 있으니, 아마 계속 이들을 활용할 겁니다. 게다가 이들은 특유의 폭력성으로 정치적 반대자들을 제거하거나 억압하는 작업에 기꺼이 사용 당하고 싶어 합니다. 하지만 이들 조국기부대도 장기적으로는 지금 태극기부대와 같은 길을 걷게 될 거라 봅니다. 그렇게 되리라는 것은 확실합니다. 불확실한 것은 그저 그때가 '언제'냐는 것이죠.